유리지
유리지 소개
유리지(劉里知, 1945년 8월 17일 ~ 2013년 2월 18일)는 한국의 1세대 금속공예가이자, 교육자, 공예미술관 설립자이다. 금속공예가로서 유리지는 금속(주로 은), 나무, 돌 등을 소재로 장신구, 가구, 환경 조형물, 장례 용구 등 다양한 기물을 만들었다. 자연에서 받은 시적 영감을 공예로 표현하는 서정적인 작품과 '삶과 죽음, 전통과 현대'의 관계를 고찰한 장례 관련 작품을 제작하였다. 생애의 많은 부분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일하며 후진을 양성하였고, 동료와 선후배 금속공예가들을 위해 국내 최초 금속공예미술관인 치우금속공예관(현 유리지공예관)을 설립하여 한국 현대 금속공예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유리지는 한국 모더니즘의 1대 작가이자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유영국 화백의 장녀로 한국이 해방되던 1945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일한 2년을 제외하고, 어린 시절 대부분을 (아버지가 어업과 양조장을 경영하던) 죽변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전학 와서 장충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카톨릭계 수녀들이 가르치는 성심여자중학교에 1회로 입학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미국의 일리노이공과대학(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뉴 바우하우스(New Bauhaus) 미학을 배우고 돌아온 민철홍 교수를 만나면서 공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의 교과과정에는 디자인과 협업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공예미술'을 2~4학년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었고 유리지는 대학에서 금속과 목공예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금속공예 전공이 개설된 시기에 첫 입학생이었던 유리지는 1969년 제 4회 《대한민국 상공미술 전람회》(약칭:상공미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며 금속공예에 두각을 나타냈다. 졸업 후에는 대학교 강사로서 학생들을 교육하면서 보다 체계적인 금속공예 조형 방법론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과 조형 방법론을 배우고자 했던 유리지는 1974년 미국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생으로 템플대학교 타일러 미술대학(Tyler School of Art, Temple University) 대학원에 진학했다. 스탠리 레친(Stanley Lechtzin)의 지도 하에 주물, 판금성형, 기계가공 등 금속 공예작품 제작에 필요한 기술들을 배우고 체득하였다. 당시 제작된 <홍차걸이>(1976)는 다이포밍 및 다양한 기술 공정을 사용해 만든 작품으로, 유려한 형태와 양감을 강조한 것을 볼 수 있다. 미국 체류 중 펜실바니아 주에서 주관하는 펜실베니아 아트 페스티벌(The Central Pennsylvania Festival of the Arts)에서 공예부 수석상(1976)을 받으며 미국에서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미국에서 귀국한 1977년 신세계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공예 기법과 기술을 선보였다. 이듬해에는 제27회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약칭:국전)에서 <향로와 잔>으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제28회 《국전》에서 특선을, 제30회 《국전》에서 추천작가상을 받으며 추천작가가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에 시간강사와 전임강사로 일하다가 1981년 교수가 되어 정년 때(2010)까지 작품 활동과 후진 양성을 병행하였다.
유리지는 공예가이자 교육자, 미술관 운영자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초창기 한국 현대 금속공예의 발전에 초석을 마련하였다. 서구의 모더니즘과 한국의 전통 사이에서 자신만의 길을 모색한 유리지는 공예를 기능주의에 한정시키지 않고 금속의 성질을 활용한 새로운 조형 방법론을 탐구하며 금속공예가로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나갔다. 장신구뿐만 아니라 환경조형물, 장례용구 등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금속공예의 가능성을 탐구했으며 한국 현대 금속공예의 성립과 발달에 앞장섰다.

